휴머노이드 로봇의 몸체를 누가 잘 만드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 로봇을 움직이는 '두뇌'는 누가 만드느냐입니다. 시리즈 9편에서 옵티머스·아틀라스·유니트리의 하드웨어를 비교했다면, 이번 편에서는 그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즉 피지컬 AI 경쟁을 정리했습니다.
이 경쟁의 중심에는 로봇을 직접 만들지 않으면서도 로봇 산업 전체의 표준을 쥐려는 엔비디아, 오픈AI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왜 로봇의 두뇌 영역에 뛰어들었는지, 각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로봇의 '두뇌'를 둘러싼 빅테크 경쟁, 왜 시작됐을까
로보틱스의 '챗GPT 모먼트', 젠슨 황의 선언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CES 2026 기조연설에서 "로보틱스 분야에도 챗GPT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하며,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추론하는 피지컬 AI 모델의 도약이 완전히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앞서 CES 2025에서 그가 "AI 다음의 개척 분야는 피지컬 AI"라고 언급했던 것의 연장선으로, 언어 모델이 걸어온 발전 경로가 이제 로봇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피지컬 AI 산업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은 기존의 하드웨어 제조사 중심에서, 막대한 자본과 컴퓨팅 파워를 보유한 빅테크 기업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로봇을 직접 만드는 것보다, 로봇의 '지능'을 장악하는 쪽이 산업 전체의 부가가치를 흡수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로봇 OS 표준 경쟁
과거 개인용 컴퓨터 시대와 스마트폰 시대에 운영체제 표준을 쥔 기업이 시장 전체를 주도했던 것처럼, 물리적 세계를 제어하는 피지컬 AI의 표준을 세우는 기업이 전체 로봇 생태계의 운영체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 오픈AI를 비롯한 여러 빅테크 기업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로봇 지능의 범용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산업계에서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이 현재의 거대언어모델 수준으로 발전하면, 로봇 기반 생산 자동화의 수준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립·포장·청소·요리처럼 서로 다른 작업을 하나의 모델이 수행하고, 로봇팔이든 휴머노이드든 하드웨어 종류와 상관없이 구동되는 것이 이 경쟁의 최종 목표입니다.
엔비디아는 어떻게 로봇 AI 생태계 전체를 장악하려 할까
프로젝트 그루트, 로봇을 위한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
엔비디아 전략의 핵심은 로봇 훈련용 시뮬레이션부터 모델 학습, 엣지 디바이스 추론까지 하나로 연결하는 생태계이며, 그 정점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한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그루트(Project GR00T)'가 있습니다. 그루트는 텍스트, 비디오, 음성 등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해 로봇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돕는 멀티모달 AI로, 개발자가 로봇 두뇌를 처음부터 만드는 수고를 덜어주는 표준 플랫폼 역할을 합니다.
CES 2026에서는 세계 최초 상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추론 모델로 소개된 '그루트 N1.7'이 공개됐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피규어, 아기봇, 1X 등 주요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들이 이미 엔비디아의 아이작 랩, 뉴턴, 코스모스 라이브러리와 젯슨 토르 칩을 기반으로 로봇 두뇌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아이작·코스모스·젯슨 토르, 시뮬레이션부터 하드웨어까지
엔비디아는 AI 모델을 학습·검증하는 시뮬레이션 플랫폼 '아이작(Isaac)'과 물리 법칙을 이해하는 월드 모델 '코스모스(Cosmos)'를 통해, 로봇이 현실에서 겪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가상 공간에서 먼저 학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휴머노이드 전용 칩 '젯슨 토르(Jetson Thor)'를 개발해, 로봇 내부에서 거대언어모델과 비전 모델을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연산 능력을 제공합니다.
엔비디아는 허깅페이스와 협력해 200만 명의 엔비디아 로봇 개발자와 1,300만 명의 허깅페이스 AI 개발자를 연결하는 오픈소스 생태계 '르로봇(LeRobot)'도 구축했습니다. 개발자들이 막대한 자본 없이도 고성능 AI 로봇을 개발할 수 있도록 주요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대중화를 이끄는 전략입니다.
오픈AI는 어떤 전략으로 로봇 두뇌 시장에 접근할까
오픈AI, 피규어AI에 두뇌를 이식하는 파트너십 전략
오픈AI는 직접 로봇 하드웨어를 만드는 대신, 최고의 하드웨어 기술력을 가진 로봇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자사의 AI 모델을 공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대표 사례가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AI와의 협력으로, 오픈AI는 피규어의 로봇에 최신 GPT 모델을 탑재해 로봇이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는 시연을 선보였습니다.
이런 방식은 오픈AI가 강점을 지닌 언어·멀티모달 능력을 물리적 로봇에 이식함으로써, 하드웨어 투자 부담 없이도 로봇 지능 시장의 표준을 노리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독립 로보틱스 모델 개발사들의 자체 연구 축적
빅테크뿐 아니라 로보틱스 AI 모델 개발만 전담하는 독립 스타트업들도 자체 연구를 꾸준히 쌓아가고 있으며, 실제 환경에서 로봇을 수개월씩 운용하며 방대한 시연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이런 방식은 새로운 물체나 환경이 등장할 때마다 처음부터 시연 데이터를 다시 모아야 한다는 확장성의 한계도 함께 지적돼 왔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연구자들이 모여 제럴리스트 AI 같은 별도의 로보틱스 모델 개발사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여러 빅테크 기업의 연구 인력이 독립 스타트업으로 옮겨가며 월드모델 연구 저변을 넓히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월드모델 연구 분야에는 최근 국내 기업도 뛰어들고 있습니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왜 지금 뜨거운 화두일까
데이터 부족 문제와 스타트업들의 도전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데이터 부족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전문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인텔리전스(PI)의 π₀ 모델은 다양한 로봇에서 약 1만 시간의 데이터를 수집했고, 제럴리스트 AI의 GEN-0 모델은 가정·창고·공장 등 실제 환경에서 27만 시간에 달하는 데이터 위에 구축됐습니다.
미국 로다AI는 시리즈A에서 기업가치 17억 달러를 인정받으며 약 4억 5,000만 달러를 조달했고, 프랑스 AMI랩은 유럽 스타트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약 10억 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두 회사 모두 영상 데이터를 통한 로봇 학습을 강조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와 테마섹 등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두 회사에 동시에 투자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시작된 도전, NC AI 월드모델
국내에서는 엔씨소프트의 AI 조직 NC AI가 로봇의 '두뇌'로 불리는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WFM) 연구 성과를 공개하며, 해외 빅테크가 주도해온 이 분야에 뛰어든 첫 국내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NC AI는 영상 생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잠재공간 정보에서 바로 행동을 생성하는 구조를 적용해, 글로벌 최고 수준 모델 대비 약 25% 수준의 GPU 자원만으로 모델 학습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NC AI는 로봇 팔의 복잡한 움직임을 제어하는 24개 조작 태스크 테스트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 모델 대비 약 70% 수준의 성능을, 현장 적용과 직결되는 18개 핵심 태스크에서는 엔비디아 코스모스 등 최고 성능 모델의 약 80% 수준 성공률을 기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드웨어 경쟁에 강한 한국이 소프트웨어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넓히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피지컬 AI와 기존 로봇 AI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기존 로봇은 정해진 작업을 반복하는 프로그래밍 방식에 의존했지만,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추론하며 스스로 행동을 계획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하나의 모델이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대언어모델이 텍스트 영역에서 이룬 변화와 비슷한 흐름으로 평가받습니다.
엔비디아는 로봇을 직접 만드나요?
엔비디아는 로봇 완제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습니다. 대신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파운데이션 모델(프로젝트 그루트), 시뮬레이션 플랫폼(아이작, 코스모스), 전용 칩(젯슨 토르) 등을 공급해 로봇 기업들이 이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하도록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은 언제쯤 실제로 상용화되나요?
업계에서는 아직 로봇 산업에 언어 모델과 같은 결정적인 '챗GPT 모먼트'가 오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대규모 투자와 데이터 수집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이 상용화 수준에 도달하는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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